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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‘불혹’ 첼리스트 송영훈
“20대 때, 제 이름 앞에 ‘잘생긴’이란 수식어가 붙어 다녔습니다. 음악가로서 ‘잘생긴’보다 ‘잘하는’이란 수식어가 붙길 갈망했습니다. 당시 제 음악은 실력을 증명해 보이기 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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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시인 유안진의 사모곡
“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삶이라 생각한 적 있습니다.딸만 셋 낳은 어머니, 그 탓으로 버림을 받았으니까요.바늘귀만 한 구멍으로 숨 쉬던 고통 속에서도 저를 시인으로 이끈 어머니.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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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유재석의 깨달음
“기나긴 무명 개그맨 시절, 무대 울렁증까지 있었습니다.무대에만 오르면 온몸이 바르르 떨리고 머리는 하얘졌습니다. 울렁증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.그러면서도 유재석이 아니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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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하정웅의 특별한 안목
“어린 시절의 꿈은 화가였습니다. 영양실조 때문에 실명의 위기가 왔습니다. 그림보다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습니다. 스물다섯에 돈을 벌 만큼 벌었습니다. 그림을 모았습니다. 일본 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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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독기 품은 소설가, 정유정
“간호사였습니다. 소설가를 꿈꿨습니다. 공모전에 11번이나 미끄러졌습니다.‘개나 소나 다 문학 한다는 현실이 슬프다’는 심사평을 듣기도 했습니다. 충격에 앓아눕기도 했습니다.그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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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장기표의 인생 반추
“수배 12년, 복역 9년, 연이은 정치 실패. 이 모두 제 인생입니다. 살면서 겪은 수많은 고난, 예서도 인생에 보탬이 될 만한 큰 가르침을 얻었습니다.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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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‘두목’ 김홍신
“철길을 베고 누워 오래 버티기 시합. 이른바 ‘대장 따먹기’에서 항상 이겼던 꼬맹이, 훗날 조직원 100여 명의 대장 노릇을 했습니다.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. 버티는 후배들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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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사진작가 박상훈의 ‘건빵눈’
“제 눈, 작아도 너무 작습니다. 더구나 웃으면 아예 없어집니다. 어릴 적부터 줄곧 따라다닌 별명이 와이셔츠 단추 구멍, 건빵 눈입니다. ‘그 작은 눈으로 용케 사진을 찍네’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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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신세용의 모진 추억
“열세 살 때 가출 소동까지 벌이며 알파벳도 모른 채 미국으로 떠난 유학, 고난이었습니다.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맞았습니다. 자다가 야구방망이로 맞아 뼈가 14군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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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학계의 ‘독안룡’ 심경호 교수
“제 오른쪽 눈,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. 대학부터 대학원까지, 두어 시간 통학버스에서도 책을 보던 습관 탓에 망막이 손상됐습니다. 이후 30년 넘게 한쪽 눈으로만 책을 보면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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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‘주문형 맞춤 배우’ 조성하
“무명배우 시절, 배역을 따기 위해 저 자신을 세일즈한다는 건 자존심을 다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. 생계를 위해 과일·화분 장사, 치킨 배달을 하며 배우도 전략 기획과 마케팅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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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소설가 신경숙의 ‘책탐’
“글을 읽을 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습니다.형제들이 빌려온 책조차 제 차지였습니다. 좋은 책, 나쁜 책 가릴 것 없이 눈에 띄는 대로 죄다 읽었습니다. 열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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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김광진의 롤러코스터 인생
“대학 3학년 때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. 금방 유명 가수가 될 줄 알았습니다. 하지만 ‘마법의 성’으로 가요 톱10에서 1위를 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. 이 당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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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한의사 신준식의 한 우물
“의사이며 한의사였던 아버님의 왕진 길, 자전거 뒷자리는 언제나 제 자리였습니다. 물 가득 찬 대야에 바가지를 올려놓고 ‘침으로 그것을 뚫어라’며 가르치시던 아버님. 어느 날 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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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설가 김혜나의 터닝포인트
“소설가가 되기 전, 저는 루저였습니다. 학교는 빼먹고 가출하기 일쑤였습니다. 공부 꼴찌에 문제아였습니다. 꿈도 희망도 없었습니다. 대학 시험은 아예 보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로 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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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소설가 김혜나의 터닝포인트
“소설가가 되기 전, 저는 루저였습니다. 학교는 빼먹고 가출하기 일쑤였습니다. 공부 꼴찌에 문제아였습니다. 꿈도 희망도 없었습니다. 대학 시험은 아예 보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로 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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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‘촌놈’ 이돈태의 창작 밑천
“저는 태어나서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강원도를 벗어나지 못한 촌놈입니다. 대학에 입학하면서야 처음 에스컬레이터를 봤을 정도입니다. 그것은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. 서른에야 영국 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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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名舞 조갑녀의 소명
“아홉 살 무렵, 조선 궁중무의 마지막 명인 이장선(1866~1939) 선생이 ‘네 몸에는 춤이 들어 있구나’ 하셨지. 열 살 때 춘향제에서 춤을 췄고, 열두 살엔 명무(名舞)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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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디자이너 요니P의 눈 화장
“세계 패션의 중심인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.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개성 넘치는 디자이너들 사이에 낀 동양인의 순진한 얼굴. 제가 봐도 아기같이 보여 주눅 들기도 했습니다. 그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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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축구감독 최용수의 그 순간
“2002년 월드컵 미국 전, 골문 앞 마지막 찬스에서 공을 허공에 날려 버렸습니다. 한 번의 찬스에서 골을 결정짓도록 20년간 골수에 박힐 정도로 훈련되었던 내 몸. 그 순간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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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만화가 이현세의 눈
“저는 적록색약입니다. 비 오는 날, 녹색이라든지 빨간색이라든지, 예컨대 신호등의 색 같은 데서 착시현상이 생깁니다. 그러니 혼합 색을 잘 못 씁니다. 차라리 원색으로 표현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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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서정태 시인의 벽
“저는 미당(未堂) 서정주의 친동생 서정태입니다. 이 사실이 벽이었습니다. 형님의 무덤이 잘 보이는 터에 황토집 짓고 살며 시집을 내었습니다. 내 나이 아흔. 이제야 미당 형님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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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이수진의 '방황'
“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미대에 떨어졌다. 아버님의 권유로 마지못해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. 문창과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시작한 대학생활. 밥 먹듯 한 결석에 학사경고는 당연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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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김석철의 미소 뒤엔 …
“잘 웃습니다. 그러니 사람들은 저더러 미소가 일품이라 합니다. 하지만 사람들은 제가 잘 웃는 이유를 모릅니다. 태어날 때부터 왼쪽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. 그래서 못